미국에서 보고 싶은 분이 한국에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그 분에게 직접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으로 되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꼭 뵙고 싶었다.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이 분과 다른 지인분들이 모임을 열기로 해서 만나서 인사를 할 겸 전쟁기념관을 찾아갔다.
삼각지역 12번 출구를 가기 전 엘레베이터가 있어서 계단 대신 좀 더 편리한 방법을 택했다.
삼각지역을 나서서 쭉 걸어가다보니 전쟁기념관 입구가 보였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로 표시된 시계를 볼 수 있었는데 전쟁기념관이라는 것을 이 시계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요즘 국제 정세가 워낙 어지럽다보니 이런 비극이 한 번 더 벌어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전쟁기념관 안에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 곳에서 행사가 진행되서 아침부터 부랴부랴 시간 맞춰 갔었다. 몇 년만에 보았기 때문에 정말 반갑게 인사드렸다. 평소 보고 싶었기도 했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바쁘신 와중에 계속 붙들고 이야기를 했었다.
강연이 시작이 되었는데 교수님 한 분이 올라오셨다. 금통위 위원이었고 현재는 교수님이신 분이셨는데 약 40분 동안 설명하셨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도통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이해도가 높다고 평소 자부하고 살았었기 때문에 처음에 당황스러웠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설교 방송을 들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목사님 설교도 있기는 하지만 이번 것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당황스러움이었다. 목소리 톤도 너무 일정하다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몇 년전만 했더라도 어떻게든 이해를 해보려고 집중해서 듣고 분석을 했었다. 그런데 나이도 40살이 넘어가고 뭔가 집중해서 들어야 할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되면서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 버렸다. 굳이 어려운 내용을 내가 집중해서 해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과거와 다른 내 모습에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 때 교수님들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차라기 그냥 혼자 책을 읽고 이해하는게 훨씬 명쾌했고 이해도가 높았다. 어려운 내용을 듣는 사람이 편하게 설명해주면 좋았으련만 본인에게 맞는 이야기를 본인에게 맞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어려웠다. 이야기를 하다가 'Overhead cost가 높은 자선 단체는 기부를 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때 마음 속의 귀를 닫게 되었다. Overhead cost는 원가 회계를 공부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단어이고 이 의미 자체를 알고 있는 일반 대중은 사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을 상대로 하는 강의는 아니구나'라고 판단하고 그냥 명상을 했던 것 같다.
눈 뜨면서 명상을 하다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교수님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이해하기 어렵지?" 반대로 "학원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은 왜 싶지?"
교수님들은 학점이 필요로하는 의무감을 갖고 있는 청자를 상대하는 것 같았다. 교수님이 하는 이야기를 학생들이 최대한 맞춰서 알아 들어야 하고 그 알아 듣는 것이 교수님이 마음에 맞는 것인지 학생들이 노력을 해야하는 구조인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청자의 배경, 지식, 관심사에 맞춰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청자가 알아서 노력해서 이해해주고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반면, 학원 강사는 그 반대인 것 같다. 학생이 이해하지 못하면 선생님은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선택을 못 받으면 컴플레인을 받거나 크게는 학원에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청자에 대한 관심을 계속 두고 있지 않다면 강사 생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학생의 반응과 배경, 지식에 최대한 안테나를 세우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1)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할 수 있는 것
2)그 이해를 내가 받아들이고 상대방에 맞춰서 반응을 할 수 있는 점이 강연을 끝까지 집중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연하신 분의 약력을 찾아보게 되었고 반대로 혹시 상대방의 나의 약력을 찾아보지 않을까 싶었다. 학원에서 일하는 만큼 청자의 반응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전쟁기념관을 나섰다. 이런 하루를 얻게 된 것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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